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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고도 다른 전두환과 노태우의 세밑 풍경
2019년 12월 19일(목) 09:51
▲서길원 大記者(대기협 순천시지회장)
-“29만원 밖에 없어 추징금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다”면서도 상어지느러미 요리와 와인을 즐기고,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법정에 서고 싶어도 설수 없다”고 치매 노인 행세를 하면서도 ‘굿샷-’을 즐기는 전두환씨는 ‘나에게서 세밑의 철학적 사유를 기대하는 네가 잘못이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한 해의 세밑은 누구에게나 회한의 시간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잘했다고 생각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미련이 남기 마련인데 후회되는 일이야 더 무얼 말하겠는가.

세밑의 시간은 일 년 중 여느 시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철학적 깊이를 갖는다. 켜켜이 쌓인 기적 같은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마무리한다는 것이야 말로 이성적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기도 하다. 하루를 매듭짓지 않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없듯이 한 해를 매듭짓지 않고는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할 수 없기에 세밑은 새로운 출발이자 희망이기도 하다.

한 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로 다가오겠지만 한 생을 마무리해야하는 시간 앞에 선 다는 것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바람에 날리던 이 달 초, 광주에서는 뿌리는 같지만 마무리의 방식은 판이하게 다른 두 개의 풍경이 세밑의 시간을 채웠다.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광주 학살을 자행한 신군부 노태우씨의 아들 재헌(53)씨가 광주를 찾아 아버지를 대신해 5·18 가족들에게 사죄했다. 지난 8월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무릎 꿇은 지 3개월여 만이다.

재헌씨는 이날 “아버지께서 직접 광주의 비극에 대해 유감을 표하셔야 하는데, 병석에 계셔서 여의치 않다”며 “아버지를 대신해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찾아 왔다”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광주의 아픔에 공감하고, 치유되길 바란다”며 “그만하라고 하실 때 까지 사과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8월 방문에서도 ‘삼가 옷깃을 여미며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고 방명록에 기록을 남겼다.

그의 거듭된 사과는 이제 광주의 눈물을 닦는 가해자의 첫 손수건이 되어 용서의 빗장을 조심스레 두드리고 있다.

오랜 투병으로 자택에 요양 중인 아버지를 대신해서 ‘돌 맞을 각오로 온’ 그에게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또 다른 풍경 하나는 광주학살의 실질적 책임자이자 주범인 전두환씨의 행보다. 치매로 인해 법정에 설수 없다던 전두환씨는 며칠 전 12·12 군사반란 40주년을 맞아 자축 파티를 열었다. 강남의 한 고급 식당에서 정호용 등 휘하 쿠데타 주역들과 함께 1인당 20만원 상당의 샥스핀 요리를 즐기며 변함없는 건재를 과시했다.

“통장에 잔고가 29만원 밖에 없다”며 가난하고 구차한 행색을 연출했던 그가 보란 듯이 군사쿠데타 자축연을 벌인 것이다.

세밑에 다다른 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불쌍함이 이보다 더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전두환씨는 그게 되레 자랑스러운가 보다.

전두환씨는 지금도 틈만 나면 치매 노인행세를 하고 있다. 골프장을 드나들며 자신의 골프 타수를 정확히 기억할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하면서도 재판이 열릴 때면 영락없이 치매노인으로 돌변하는 그의 연기는 올해의 연기대상감이 되고도 남을 성 싶다. 골프를 즐기던 그가 추징금에 대해 묻자 “네가 내주라”며 삿대질과 함께 비아냥대던 영상은 그만이 연출할 수 있는 독보적 드라마다.

“29만원 밖에 없어 추징금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다”면서도 고급 식당에서 상어지느러미 요리와 와인을 즐기고, “법정에 서고 싶어도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설수 없다”고 치매 노인 행세를 하면서도 ‘굿샷-’을 즐기는 전두환씨는 ‘나에게서 세밑의 철학적 사유를 기대하는 네가 잘못이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경남 산청 양민학살 기념관에 가면 당시 양민학살을 지휘했던 자들을 벽에 붙여놓고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는 부조상을 볼 수 있다. 역사의 심판 속에 영원히 갇혀 있으라는 의미다. 이 보다 더 끔찍하고 더 큰 형벌이 있을까 싶다.

전두환씨는 나올 수 없는 벽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려는가. 세밑이다. 시간이 주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가 영영 나올 수 없는 벽으로 들어가지 않길 바란다. 한 인간이 더 없이 가여워지는 세밑이다.
기자이름 대한기자협회 광주전남협회
이메일 jgkoreaj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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