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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이 최고 살기 좋다고?
2019년 11월 21일(목) 13:58
▲서길원 大記者(대기협 순천시지회장)
-도시 자체가 소멸위기를 겪고 있는 마당에 ‘전남도 주민생활만족도 1위’라며 생색을 내고 있으니 한가해도 이렇게 한가할 수가 있는가 싶다.-

빈집 없는 농촌을 보고 싶고, 폐교된 학교가 교문을 열고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다시 보고 싶고, 내 고장에서 출퇴근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싶다. 그래야 만족한 내 고장 전남이 된다. 며칠 전 ‘전남도가 주민생활만족도 조사에서 6개월 연속 전국 1위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지역 신문에 큼직하게 소개됐다.

여론조사 결과 서울시는 만족도가 63.4%이고 인근 광주만 해도 62%인데 전남은 63.7%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전남에서 태어나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는 필자로서는 ‘주민생활 만족도 1위’가 의아했을 뿐만 아니라 믿어지지 않았다.

보도는 만족도 1위를 의심하는 사람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이유를 설명했다. 다름 아니라 김영록 전남지사가 민박간담회와 현장토론회 등으로 도민과 함께 호흡하는 행정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또 전남 새천년 비전인 ‘청정 전남, 블루 이코노미’선포와 올 가을 연이은 태풍으로 인한 각종 재난재해에 예비비를 긴급 투입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점도 만족도 1위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보도는 말미에 김 지사가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 조사에서도 64.1%를 기록, 6개월 연속 전국 1위를 기록했으며 60%대 이상의 지지율은 전국 17개 시·도지사 가운데 김 지사가 유일하다고 덧붙였다.

내 고향의 주민생활 만족도가 전국 1위를 차지하고, 내 고향의 도백이 직무수행에서도 전국 최고라니 영광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어쩐지 유쾌하기 보다는 오히려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가 살고 있는 고향이 싫다거나 또는 고향의 삶이 불만족스럽다는 의미는 아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필자도 내 고향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살고 있다. 힘들어도 내 땅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내 고향의 삶이 전국 1위를 할 만큼 최고의 고장인가 하는 데는 수긍할 수 없다. 그러기에는 전남도에 관한 각종 지표와 삶의 현장이 척박하고, 그 척박의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1차 산업인 농어업이 주 소득원이다 보니 재정자립도는 전국꼴찌로 가난하기 그지없고, 노인 인구는 전국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곳이 전남도가 아니던가. 벙긋하면 귀촌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가 신문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보니 젊은이들은 인근 광주나 수도권으로 떠나는 곳이 전남도다. 교육환경여건은 또 어떠한가. 지난해 수능 시·도별 평가결과 전남이 전국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사람들은 떠나고, 흉물이 된 빈집만 늘어나는 시골마을의 그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가득한 전남도가 삶의 만족도 최고라는 여론조사 결과는 허망하기 짝이 없는 숫자놀음에 다름 아니다.

심각한 수치 몇 가지만 살펴보자. 익히 알고 있겠지만 전남의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22.4%로 전국 최고를 기록, 초고령사회에 이미 진입했다. 뿐만 아니라 인구 10만 명당 사망률이 전국 평균의 1.6배로 전국 1위다.

설상가상으로 아이들의 비중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전남의 아동(0~14) 안전사고 사망률은 10만 명당 3.5명으로 충남에 이어 전국 2위다. 그나마 1위가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다.

그러다 보니 인구학적 쇠퇴 위험 단계 진입을 나타내는 지방소멸 위험지수에서도 전남은 2018년 6월 기준 0.47로 전국 최저수준이다.

지방소멸지수가 0.50 이하일 경우, 국가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 도시는 소멸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전남은 이렇게 이미 소멸이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전남도의 인구는 1992년 228만 명이었으나 계속 감소, 2004년 198만 명으로 처음 200만 명 아래로 떨어진 이래 2018년에는 188만 명을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전남도의 주민생활 만족도 1위의 이유가 김 지사의 민박간담회나 현장토론회 덕분이라는 분석에서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유구무언이다.

도시 자체가 소멸위기를 겪고 있는 마당에 ‘전남도 주민생활 만족도 1위’라며 생색을 내고 있으니 한가해도 이렇게 한가할 수가 있는가 싶다.

필자 같으면 부끄럽고 얼굴 화끈 거릴 것 같은데 그래도 전남도는 그런 수치가 자랑스럽나 보다.

다시는 ‘전남도 주민생활만족도 전국 1위’라는 기사를 보고 싶지 않다. 빈집 없는 농촌을 보고 싶고, 폐교된 학교가 교문을 열고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다시 보고 싶고, 내 고장에서 출퇴근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싶다. 그래야 만족한 내 고장 전남이 된다.
기자이름 대한기자협회 광주전남협회
이메일 jgkoreaj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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